Culture[든 자리] 디자이너 김민정님

남윤호

 든 자리’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파티션을 돌며 인사하던 때를 돌이켜본다. 이제 막 팀장이 된 근탁님의 인도로 각 국에 자기 소개를 하고 명함을 받았었다. 팀장으로서는 

첨으로 신입들을 인사시키는 팀장님도 회사가 처음인 신입사원들도 어색해서 웃음지었고, 오히려 그것이 서먹할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생활의 처음은 누구든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역할을 인지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수 일에서 수 개월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한 해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6월. 신입이라고 하기엔 이미 네오다임에 익숙해진 New comer들에게 여러 질문을 건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콘텐츠를 기획하는 입장에서의 고민이 있었다. 특히 이번 인터뷰이인 민정 씨뿐만 아니라, 올해 입사하신 여러 분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중고신인’인 경우가 

있었고 입사한 지 시일이 지난 경우가 꽤 되어 더욱 더 뻔한 인터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다. 요사이 회사들에서는 든 자리도, 난 자리도 금세 일상과 업무에 묻힌다. 개인은 더 파편화되고 기존 시스템에는 

빠르게 적응해야 하기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New Comer들의 인터뷰에 ‘든 자리’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다. 난 자리만큼 든자리도 중하고 그들이 스며들 자리를 응원한다는 의미였다. 

그들의 자리가 좀 더 도드라지고, 사내 인터뷰의 뻔한 프레임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동시에 욕심이지만 이 지면의 내용이 인터뷰이에게 말 붙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목소리에 은근한 힘이 있는 사람


인근 카페에서 만난 민정씨는 조용하고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살피고 나서 말하는 데에 더 익숙한 사람 같았다. 

다른 페이스북 TF팀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해서 기다리는 동안 하릴없이 평소 디자이너들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디자인 업계의 은어 같은 거 아시면 하나 알려 주실래요?”


그 전까진 인식하지 못했는데 유달리 목소리에 힘이 있거나 말을 술술 꺼내놓는 편이 아녔지만 전달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말을 할 때도, 평소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 말할 내용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 같은 인상이 있었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도무송[i]’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테두리를 부드럽게 따는 작업을 보통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일본어에서 온 거더라구요. ‘톰슨’을 일본식 발음으로 해서 도무송이 됐대요. 인쇄 제작 업계에서는 그런 일본어에서 와전된 게 꽤 많은 것 같아요.” 

 

“그건 꼭 ‘노다지[ii]’ 같은 느낌이네요.” 

 

곧이어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는 찬영 팀장과 서현 프로가 카페로 찾아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10개의 질문들  


기존 인터뷰와는 방식을 조금 달리해봤다. 인터뷰는 서로 각자에게 묻는 방식, 내가 이야기했던 것을 남에게 되묻는 방식이었다. 인터뷰는 주사위를 던져 숫자에 

해당되는 질문에 답을 하고 본인이 답했던 질문을 남에게 되묻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알약이 있다면 몇 끼니 정도를 식사 대신 알약으로 복용할 수 있을까? 
  •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편인가? (100점 만점 기준) 
  • 당신은 사냥꾼인가 채집꾼인가?
  • 인류에 대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무엇입니까?
  • 배우고 싶은 언어가 있다면? -네이티브처럼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 모으는 물건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 거기에 얼마만큼 홀릭되어 있는가?
  •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제일 많이 재생된 음악은 무엇일까?
  • 월급에 오류가 생겨 0 하나가 더 붙어서 들어왔다면 어떻게 쓰고 싶은가? (오류난 입금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을 묻거나 반환하라고 추궁하지 않는다)
  • 신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마법이 생긴다면 어떤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은가?
  • 좋아하는 영화 배우와 그가 출연한 작품 중 추천하는 영화는?


(이 지면에서는 인터뷰이인 민정 씨가 답했던 질문 위주로 내용을 꾸몄다. 혹시나 다른 분들의 문답이 궁금하시다면 이 기회에 민정씨나 인터뷰어들에게 말을 건네보는 것도 좋겠다.)   



당신은 사냥꾼인가 채집꾼인가? 

민정: 저는 사냥꾼. 도전의식이 있는 편이예요. 호기심도 많아서 사냥꾼 같아요.

서현: 전 맘이 약해서 동물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아요. (민정 : 그럼 나는? 일동 웃음)

사냥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채집가에 가까워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제일 많이 재생된 음악은 무엇일까? 


민정 : 브아솔(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영준의 저음 보이스를 좋아합니다. TMI일 순 있는데 콘서트에 가서 직접 노래를 듣는게 로망이예요.  


브아솔을 못 알아들은 세 사람. 이내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준말임을 알고 맞장구를 친다.  


찬영 : 저도 브라운 아이드 소울 나얼 좋아하는 편이예요. 저는 무교인데 나얼이 부른 찬송가 듣고 한 동안 그 음악만 한 달 정도 반복했었어요. 무교이지만 묘하게 종교적인 내용도 그닥 위화감이 들지 않았어요.

서현: 예전에 삼성역 크링에서 나얼 본 적이 있어요. 작가이기도 해서 나얼 전시회 갔었어요. 티비보다 꽤 마르고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해보였어요.

윤호: 저도 세운상가에서 근무할 때 본 적이 있는데 아는 LP집 사장님하고 엄청 친하시다고 하더라구요. 학생 때부터 LP 사러 다녔다고. 저도 나얼씨 예민하다는 이야길 들었던 터라 LP 판매대에서 ‘팬입니다’ 하고 수줍게 인사하고 도망치듯 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인터뷰어의 본분도 잊은 채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가수 대신 실컷 나얼 이야기만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영준의 노래 중 민정씨가 좋아하는 곡은 이 곡이었다.  


추억사랑만큼 – 브라운 아이드 소울 


월급에 오류가 생겨 0 하나가 더 붙어서 들어왔다면 어떻게 쓰고 싶은가?


민정 : 여행을 좋아해서 여유가 많이 생긴다면  미국 로드 트립을 가보고 싶어요. 서부에서 동부로 차로 이동하면서 풍경도 보고 혼자 여행하고 싶은 게 

위시리스트예요. 주변에선 혼자가기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어떤 사람은 예전보단 덜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겪어봐야 알 것 같아요. 

저한테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여행이예요.

윤호 : 곳곳마다 우리나라로 치면 휴게소 같은 레스토랑에서 커피도 마시고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누면 여유롭고 좋을 것 같아요.  

서현 :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세요 ?

민정 : 이번 휴가 동유럽으로 가요. 부다페스트 갈 건데 특히 야경이 기대가 돼요. 야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도 다녀오고 나선 야경이 예쁘다고 

이야기하더라구요.


부다페스트의 야경 

 

인류에 대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무엇인가? 


민정 : 요즘 들어 더 정이 없어진 것 같아요. 주택가에서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도 꺼리는 상황이고. 정이 많이 없어진게 현실 같아요. 단적으로 아는 언니가 이사해서

위 아래 옆집에 이사떡을 돌리는데 다들 놓고 가시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것들이 이젠 별로 정답게 느껴지지 않는 사회가 되버린 것 같아요. 

언니의 경우엔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은 오피스텔이었는데 안면 트고 서로 돕고 살자라는 의미에서 돌린 거라 더 서운해했던 것 같아요. 

험한 상황이나 범죄들도 이야기 많이 들려오는 흉흉한 분위기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한군데도 받아들이는 곳이 없었다는 건 좀 삭막하게 

느껴졌어요.

 

서현 : 요즘 성악설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돼요. 패륜이나 혐오 범죄, 폐수 무단 폐기 같은 환경문제. 조금씩 물도 아끼고 환경도 신경쓰려고 

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특히 우려되는 건 다음세대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예요. 미세먼지도 그렇고 환경 오염을 생각하면 

암담하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이익만 추구하는 집단에 대해 혐오가 생길 것만 같아요.

 

찬영 : 요즘 분위기가 대개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착하면 손해보고 신경쓰면 욕먹는 느낌. 그래서 그런지 호의도 한번 더 생각하게 돼요. 길 가다가 취객이 

쓰러져 있어서 깨우니 놀라서 도망가거나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요. 요새 분위기는 무슨 큰 일이 나도 내 일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예요. 할아버지가 

힘들게 계단 오르셔서 지팡이도 챙겨드리고 도와드렸는데 인사도 없이 그냥 휙하고 가버리시기도 했어요. 감사 인사를 받고자 한 것 아니지만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 별로 없는 게 현실 같아요.  

 

이사 떡은 요즘 이런 느낌일까?  

 



좋아하는 영화 배우와 그가 출연한 작품 중 추천하는 영화는? 

민정 : 좋아하는 배우는 손예진이예요. 믿고 보는 배우랄까. 특히 요즘 손예진의 연기가 물이 올랐다고 생각해요. 전형적인 미인인데도 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으로

보편적인 역도 자연스러운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는 예쁜 연예인이라기보단 정말 엄마같은 모습이 절절히 보여서 개인적으로 

손예진의 연기를 다시 봤어요.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 중에 하나예요.

 

영화 ‘비밀은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민정씨는 이번 인터뷰는 왠지 스터디 같다고 이야기했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치곤 심도 깊은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때론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이런 질문들도 가치 있지 않을까. 


10개의 질문을 통해 네 명이 나눴던 대화는 고작 삼십여분이었다. 그건 앞서 이야기한 도무송 같은, 겉 테두리에 불과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닥 긴 시간은 아녔어도 아마 이번 인터뷰가 없었다면 알 지 못했을 민정 씨의 여러 면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인터뷰어의 입장에선 노다지였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 지 잘 아는 사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네오다임엔 내실이 있고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각자의 대답을 듣고 대화를 나누며 고개를 많이 끄덕인 만큼 

조금 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결들을 알 수 있었다. 


민정씨는 다른 네오다이머들처럼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 지 아는 사람’이었다. 여행의 길목에서 낯선 풍경을 보고도 익숙함을 느끼듯, 길지 않은 대화가 밀도 

있었던 이유는 그런 익숙함이었다. 더불어 그렇게 호기심 많은 이가 걷는 풍경의 모습은 어떠할런지, 이번 휴가지의 야경은 어떠했는지 휴가 뒤에 한번 물어보고 

싶어졌다.


[i] 도무송 : 틀에 따라 프레스로 찍는 인쇄의 형태 중 하나이다. 유래는 톰슨(Thompson)의 발음이 일본에서 변형된 것이다. 평안 인쇄 방식으로 인쇄물에 칼선을 넣는 것을 통칭한다. 영어식으로 하면 ‘톰슨 프레스(Thmson Press)’, 미국에서는 Die cutting이라고 부른다.  

   

[ii] 노다지 : 지금은 주로 본래의 의미보단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노다지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과거 외국인에 의한 금 채굴이 활발했을 때, 금광을 발견하면 외국인이 손대지 말라고 "No touch"라고 했던 걸 노터치→노타치→노다지라고 잘못 듣고서, 금광의 광맥 = 노다지 라고 인식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속설에 불과하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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